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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Culture

호쿠사이 미술관 : 우키요에 목판화의 거장 호쿠사이의 흔적을 담은 미술관

 

 

‘덧없는 세상의 그림’을 의미하는 우키요에와 호쿠사이


스미다 호쿠사이 미술관(すみだ北斎美術館)은 스카이트리가 위치한 스미다구(墨田区)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술관 이름이 그렇듯 우키요에의 대표적인 화가인 호쿠사이와 그의 제자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 앞에 스미다가 붙은 이유는 호쿠사이가 90년에 달하는 생애 안에서, 90번이 넘는 이사를 대부분 스미다구에서 했기 때문입니다.

 

습작 시대 : 우키요에 화단 데뷔

호쿠사이는 6살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2살부터는 도서대여점(貸本屋)에서 일했으며, 14살에는 판화 일을 시작했습니다. 1778년에는 야쿠샤에(役者絵、가부키 배우를 그린 그림)로 주목받고 있던 가스가와 슌쇼의 제자로 들어가 다음 해에는 본인을 ‘가스가와 슌로’로 지칭하며 우키요에에 데뷔했습니다.

 

요미혼 삽화의 시대 : 인기 일러스트레이터

스승인 가스가와 슌쇼가 사망하자 호쿠사이는 가스사와 파를 떠나, 1794년 새롭게 ‘소리’라는 이름으로 에도 린파(교토에서 생겨나 전해지던 린파예술(琳派藝術)가 도쿄(에도)로 오며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음)의 세계로 뛰어듭니다. 분카 시대(일본 연호 중 하나, 1804~1818)에 들자, 호쿠사이는 요미혼 삽화 제작에 열중했습니다. 호쿠사이는 먹의 농담(색깔이나 명암 따위의 짙음과 옅음)을 이용한 공간 표현, 기발한 구성 등 요미혼 삽화의 예술성을 비약적으로 높였습니다.

 

그림교습서 시대 : “호쿠사이 만화”의 탄생

이 시기에는 호쿠사이의 그림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전국적으로 있었기 때문에, 에데혼(絵手本, 그림을 배우는 데 사용하는 교습서) 제작에 정열을 쏟아부었습니다. 현재, 『호쿠사이 스케치』라는 이름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호쿠사이 만화』 제작도 이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그 권수만 15권, 4000점의 그림이 수록될 정도로 엄청난 양의 그림이 실렸습니다. 양은 치차하고, 내용물을 보더라도 일본 만화의 기원으로 볼 정도로 엄청난 영향을 준 작품임에 틀림없죠.

출처 : 오타기념미술관 웹사이트

 

니시키에 시대 : ‘후지산 36경’ 제작

이 시기에는 「후지산 36경」을 필두로 하는 유명한 니시키에 명작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종래, 우키요에는 풍경화라고 칭해지는 장르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후지산 36경」의 대유행에 의해, 우키요에는 풍경화라는 신장르를 확립하는 위대한 업적을 세웠죠. 「후지산 36경」 안에는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보셨을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를 보면, 파도의 생동감은 그림을 보는 사람을 압도시키는 웅장함을 가지고 있는데, 사실 이 그림은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 그림의 의미가 다르게 보입니다. 작품은 거대한 파도가 험한 바다를 지배하는 가운데 그 파도에 휩쓸리기 직전인 조그만 배 세척과 후지산의 모습을 담아냈습니다. 파도는 엄청난 크기와 날카로운 발톱과 같은 거품을 내뿜으며 위용을 과시하는데, 그 아래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인간의 존재를 부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배 3척의 모습에 포커스를 두면 그림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거센 파도 사이로 세 척의 배가 보이고 모두 짐이 없는 빈 배이며 각각 8명이 노를 젓고 있고 배 앞에 두 명씩 더 타고 있습니다. 이 배들은 오시오쿠리선(押送船, 돛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여러 사람이 노를 저어 나아가는 배)이며, 속도를 낼 수 있어 사가미만(相模湾)이나 보소(房総) 앞바다 어장에서 잡은 신선한 생선을 주로 옮겼습니다. 특히, 가다랑어는 에도시대 사람들이 좋아했기 때문에, 니혼바시까지 수송되어 고가에 거래되었습니다. 이 배경을 알면, 그들은 오시오쿠리선에서 파도와 맞서며, 가다랑어와 생선을 운반하기 위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바다를 건넌 『호쿠사이 만화』

19세기 후반, 파리를 중심으로 퍼진 일본 취미 「자포니즘」. 그보다 앞서 가장 중요한 영향을 준 것은 호쿠사이었습니다. 1856년, 파리에 사는 동판화가 브라크몽은 친구의 인쇄 공방에서 생각지도 못한 발견을 합니다. 일본에서 도착한 도기의 완충재(충격으로부터 제품을 보호하는 소재)가 호쿠사이 만화이었던 것입니다. 그 대담한 구성이나 표현은 매우 충격적이어서, 그는 『호쿠사이 만화』의 우수성을 친구와 지인에게 알리기 시작합니다. 파리의 예술가들은, 호쿠사이를 계기로 해 일본식 미술 표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에두아르 마네의 「에밀 졸라의 초상」의 배경에는 병풍과 스모 그림이 그려졌고, 모네의 제2 인상파 전에 「라 자포네즈」를 출품하는 등 당시 유럽 미술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