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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In the mood for Films

이터널 선샤인 : 잊을 수만 있다면 영원한 햇살이 드리울까?

12월호: 뉴욕시티 가이드

 

 

잊을 수만 있다면 영원한 햇살이 드리울까?

 

줄거리

어느 날 연인이었던 조엘(주인공, 짐 캐리)을 알아보지 못하는 클레멘타인을 마주하고 심상치 않음을 느낀 조엘. 클레멘타인처럼 조엘은 잊고 싶은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라쿠나사를 찾아가 헤어진 연인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한다. 기억이 삭제되는 과정 속에서 그녀와 만났던 기억, 사랑이 싹트던 순간, 그녀와의 행복했던 순간들, 가슴속에 각인된 추억들을 지우고 싶지 않아서 몸부림치기 시작한다. 당신을 지우면 이 아픔도 사라질까? 사랑은 그렇게 다시 기억된다.

 

 

스토리

“Meet me in montauk”
“몬탁에서 만나자”

 

 

영화는 현재의 시점에서 시작되어 과거로 돌아갔다가 다시금 현재로 돌아오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점

“2004년 밸런타인데이에 관한 푸념들, 오늘은 카드 회사가 만든 날로 사람들의 기분을 잡치게 한다."

‘몬탁행 기차는 플랫폼 B에서 출발합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반대편 기차를 향해 몸을 던지는 주인공. ‘나는 그렇게 충동적이지 않은데’ 조엘은 그렇게 자신도 이해를 못 한 채로 몬탁으로 향한다. 2월의 몬탁에서 방황하는 조엘. 해변을 거닐던 중, 예상치 못한 사람과 마주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클레멘타인. 열차 안에서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클레멘타인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맞닥뜨리게 된다.

 

과거의 시점

서점에서 마주친 헤어진 연인인 클레멘타인이 낯선 남자와 키스를 하고, 그를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인 것 마냥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 당혹함을 감출 수 없는 조엘.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의 친구가 라쿠나사에서 온 편지를 그에게 들이미는 순간, 조엘은 모든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라쿠나사는 사람들에게 잊고 싶은 기억만을 잊게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회사였고, 클레멘타인 또한 조엘과의 기억을 잊기 위해 라쿠나사를 찾았던 것이다.

 

조엘도 그렇게 라쿠나를 찾아가게 된다. 상담 중 닥터 하워드는 이런 말을 한다.

“먼저 하셔야 할 일은, 그녀와 관련된 모든 물건을 가져오는 겁니다. 모든 것을요. 그 물건들을 바탕으로 클레멘타인에 대한 뇌 지도를 만들 겁니다.”

 

그렇게 모든 물건을 모아서 찾아간 후, 그날 밤 조엘은 깊은 잠에 든다. 잠이 든 사이에 라쿠나의 직원이 찾아와 기억을 지우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녀를 지우려는 과정 속, 다시금 그때의 기억들을 회상하며 좋았던 순간들과 악몽과 같았던 기억들 사이에서 기억을 지우는 것을 거부하며 발버둥 친다.

 

일이 예상대로 진행이 되지 않자, 라쿠나의 직원은 원장인 닥터 하워드에게 전화를 해 그를 불러낸다. 닥터 하워드는 다시금 일을 정상 괴도로 올려놓고 그 자리를 뜨려고 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리셉션 담당 여직원 매리와 키스를 하며,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에 휘말린다. 밖에는 닥터 하워드의 부인이 그의 외도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 사실을 알아차린 둘은 황급히 그녀의 뒤를 쫓는다. 닥터 하워드의 부인은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고 현장을 떠난다.

 

You can have him. You did..”

“네가 가져라. 이미 그랬지만.”

출처: https://www.getyarn.io/yarn-clip/3a9411dd-f459-4bce-942b-a2ef49dcd172

 

 

매리는 이미 닥터 하워드와 불륜을 한 적이 있었고, 그녀의 요청으로 기억을 지웠던 과거의 사실이 그녀를 덮쳐왔다. 큰 충격을 받은 듯한 그녀는 다음 날, 모든 짐을 가지고 라쿠나를 빠져나온다. 그리고 라쿠나에서의 모든 파일들은 당사자들에게 보내는 선택을 한다.

 

현재 시점

다시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옵니다.

‘몬탁행 기차는 플랫폼 B에서 출발합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반대편 기차를 향해 몸을 던지는 주인공.

 

몬탁에서 클레멘타인과 재회한 후, 그녀와 함께 조엘의 아파트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클레멘타인은 매리에게 받은 자신의 녹음테이프를 재생한다. 녹음테이프에서 상담받을 때 말했던 모든 내용들이 흘러나왔고, 조엘에 대한 악담들이 쏟아져 나오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조엘은 그녀에게 내리라고 한다.

 

집에 돌아간 조엘 또한 같은 내용의 편지와 테이프를 받아들어 재생하고 있었고, 뒤늦게 그를 쫓아온 클레멘타인은 비슷한 내용의 테이프를 들으며, 집에 돌아가야겠다며 그의 아파트를 떠난다. 그녀를 뒤따라나간 아파트 복도에서 클레멘타인에게 다시 시작하자며 말을 건넨다.

다시 시작하자는 조엘의 말에 클레멘타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But, you will! You know. You will think of things. And I’ll get bored with you and feel trapped because that’s what happens with me”
“지금이야 그렇지만, 근데 곧 거슬려 할 테고, 난 자기를 지루해하고 답답함을 느낄 거야.”
“괜찮아. 상관없어.”
“그래.”
“뭐 어때.”

 

감상평

Blessed are the forgetful for they get the better even of their blunders.
망각한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7장 217 문단)

 

처녀의 제비 뽑기와 잊혀진 세상에 의해 잊혀가는 세상과 흠 없는 마음에 비추는 영원의 빛과 이뤄진 기도와 체념된 소망은 얼마나 행복한가. 알렉산더 포프

 

영화 속에서 언급된 두 인용 문구는 영화에 대한 여러 고찰을 하게끔 만듭니다.

 

망각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는 말은 라쿠나의 직원이던 매리가 그토록 맹신하던 믿음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망각으로 인해 과거의 실수를 잊은 후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던 그 사실은 그녀에게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망각이 끝나자 잊고 있던 고통이 다시 그녀를 엄습하고, 이번에는 모든 기억들을 가진 채로 일하던 직장을 떠나는 결과를 선택합니다.

 

매리의 선택은 많은 것을 암시를 합니다. 언뜻 기억을 지우는 일은 간단한 해결 방식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술의 힘을 빌리는 것 또한 잠시나마 무언가를 잊기 위한 방식이니까요. 하지만, 술이 깨면 잊고 있었던 아픔들이 다시금 엄습해 옵니다. 어느새 잊었다고 하더라도 매리처럼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죠.

 

또한, 정신과 육체라고 하는 두 가지 세계를 분리시킬 수는 없다는 것 또한 자명한 사실로 보입니다. 기억만 지운 조엘은 무언가의 이끌림으로 인해 몬탁에서 클레멘타인과 조우하게 되었고, 매리 또한 닥터 하워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죠. 몸이 기억한다는 말이 있듯이 정신과 육체는 연결되어 있는 유기적인 존재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망각의 방식이 아닌 기억을 가지고 떠난 매리의 방식은 어떤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일까요? 때로는 아픔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하고, 앞으로의 자신을 성장시킬 필요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고객들에게 편지를 보냄으로써 그들이 느꼈던 상실과 실망 그리고 아픔의 기억들을 마주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영화에 등장하는 니체와 알렉산더 포프의 인용구는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요? 두 사람의 말 모두 잊는 것을 좋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매리와 조엘의 사례에서 보듯이, 망각은 그들에게 잊고 있던 고통을 주었습니다. 단서는 영화 마지막 장면,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다시 만나기로 한 장면에 있다고 보입니다.

“근데 곧 거슬려할 테고, 난 자기를 지루해할 거야.”

“괜찮아. 상관없어.”

“그래.”

“뭐 어때.”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되, 과거의 순간들에 사로잡혀 현재의 순간을 망치는 것을 반대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집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 모두 서로의 장단점을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 다시 싸우게 될 것이고 다시 헤어지게 될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하지만, 그런 과거들에 사로잡혀 현재 서로 함께 있는 시간들을 망치게 된다면, 누구보다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클레멘타인의 걱정스러운 감정들이 눈 녹듯이 사라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처럼 과거의 잘못과 기억들을 우선하기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에 집중하는 것이 니체와 알렉산더 포프가 말하는 망각일 겁니다. 영화 제목인 영원한 햇살은 우리에게 내리쬐지 않을 것입니다. 삶에 대한 걱정과 아픔, 실수를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하나의 고민이 해결되더라도 또 다른 고민들로 금세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순간들 속에서 현재에 집중하는 것으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에 의해 잊혀가는 세상과 흠 없는 마음에 비추는 영원의 빛과 이뤄진 기도와 체념된 소망은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