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style/In the mood for Films

나라야마 부시코: 무질서함 속 피어난 질서

 

무질서함 속 피어난 질서

 
영화의 줄거리 및 스포가 포함된 게시물입니다.
 

줄거리

겨울은 많은 것을 앗아가는 계절이다. 누군가에겐 어머니를 ‘나라야마’ 떠나보내야 하는, 밥이 없어 근심 걱정하며 굶어야 하는, 그러다 남의 작물에 손을 대야만 했던 고통스러운 계절이다. 많은 것을 거둬들일 수 없음으로 인해, 입을 줄여야 하는 절박한 계절이다. 갓 태어난 사내아이는 겨울 끝자락 논바닥에 버려지고, 갓 태어난 여자아이는 소금 한 줌에 팔려간다. 마을은 산 깊은 곳에 있어, 정부에 통제를 받지 아니한다. 무질서해 보이는 마을 안에는 살아남기 위한 그들만의 질서가 꽃 피었다. 누군가의 작물에 손을 대거나 도둑질을 하면, 온 마을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가 응징해 보이고, 최악의 경우 생매장시킨다. 누구든 70세가 되면 ‘나라야먀’에 올라야 한다. 인생의 끝자락 나라야마에서 죽음이 찾아오기를 기다려야만 한다. 자신의 어머니도 그랬고, 시어머니도 그랬다. 이제는 그녀의 차례다.

 
 

스토리

설원에 놓인 집들을 비치며 영화는 시작됩니다. 올해로 69세를 맞은 백발의 할머니. 구석에서는 ‘산 가는 날에 눈이 펑펑 쏟아지는구나’라며 의미심장한 노래를 불러댑니다. 이 가족은 농사로 일 년을 버텨야 합니다. 겨울을 버텨낼 식량이 없다면, 식구의 입을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봄이 찾아오자 겨울을 나기 위해 분주히 움직입니다.

 
리헤이(할머니의 남편) 30년 전 모든 걸 두고 홀로 마을을 떠났습니다. 흉작으로 갓 태어난 딸아이를 소금장수에게 팔 정도로 살아가는 게 쉽지 않았죠. 당시 타츠헤이의 할머니의 연세도 예순아홉이었고, ‘나라야마’에 오늘 나이였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데리고 산에 오를 수 없었던 아버지는 그렇게 마을을 홀로 떠났던 겁니다. 하지만, 타츠헤이는 자신의 아버지와는 다르다고 말로는 호언장담해 보지만, 이제는 그런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할 나이가 된 것처럼 보입니다.

 
 
어느 날, 옆 마을에서 여성 한 명이 타츠헤이의 집으로 찾아옵니다. 그녀는 타츠에이와 재혼을 하기 위해 먼 길을 왔습니다.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된 그녀를 새로운 부인으로 맞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타츠헤이의 재혼, 자신을 대신해 줄 사람이 찾아오자 할머니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으로 가, 돌절구에 자신의 앞니를 부딪혀 부러뜨립니다. 자신이 산에 오를 정도로 쇠약해졌다는 모습을 타츠헤이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죠.

이번 가을은 유독 흉작입니다. 식량이 부족하면 굶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둑질에 마을 전체가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데요. 빗물 집 사람들이 수 차례에 걸쳐 마을 사람들의 작물에 손을 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 마을 남자들이 야심한 밤 빗물 집을 습격합니다. 모두 잡아 인근 야산으로 향하는데요. 그곳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칠흑 같은 어둠을 품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빗물 집 가족을 묻어버리고, 공기를 가르며 뿜어져 나오던 고성 소리는 사라져 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졌습니다.

 
그날 밤, 마을 사람들과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타츠헤이는 어머니에게 왜 일부로 이를 뺏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요전 날, 타츠헤이의 동생에게 어머니가 넘어져서 이가 부러진 것이 아니라 일부로 부러뜨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이번 겨울에 나는 산으로 갈란다’라며 아무렇지도 말해 보입니다. 자신의 어머니, 시어머니도 산으로 갔고, 이번엔 자신의 차례라며 태연하게 웃음 지어 보입니다. 그러고는 이곳에서의 삶이 참으로 고되다고 하는데요. 입이 둘 줄었으니 이번 겨울은 어떻게 버틸 수 있지 않겠냐는 말에 타츠헤이는 눈물을 보입니다. 타츠헤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모두를 위해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가족들과 점점 멀어지려고 하는 것을요. 그것이 어머니와의 이별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나라야마에 오를 날이 벌써 내일입니다. 아버지 리헤이를 봤다는 서쪽 산 풀숲에서 봤다는 마을 사람의 말에 타츠헤이와 어머니는 그곳으로 향합니다. 그를 봤다는 곳에는 나무 한 그루가 우두커니 서있었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타츠헤이가 입을 엽니다. 30년 전에 아버지와 곰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서 아버지를 죽였다고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를 나라야마로 모셔야 한다는 말을 기점으로 시작된 말다툼 끝에 아버지를 총으로 쏴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전혀 혼란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좋았지만 그는 규칙을 어겼다며, 타츠헤이가 아닌 산신이 그를 응징한 것이라며 옹호하기까지 합니다.

 
 
그날 밤, 산에 가기 위한 행사가 열립니다. “산 갈 때의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들이 있는데, 하나 산에서는 입을 열지 말 것, 집을 떠날 때는 아무도 모르게 나설 것…” 행사가 끝났을 즈음, 타츠헤이의 마음은 참 무거워 보입니다. 어스름한 안개가 짙게 깔린 새벽이 찾아오고, 아들의 등에 업혀 산으로 향합니다. 험하고 가파른 산기슭을 온 힘을 다해 헤쳐나가는 타츠헤이. 돌에 채여 발톱이 들려 피가 흐르지만, 나라야먀의 정상에 도착합니다. 해골로 가득한 산 정상을 바라보며 이제는 어머니를 놓아줘야 한다는 현실에 직면하자 타츠헤이의 눈시울은 붉어집니다. 그렇게 어머니의 품에 안겨 아이처럼 울던 타츠헤이는 자신을 떠나보내려는 할머니의 등 떠밀림에 허탈함과 슬픔이 공존하는 얼굴을 하며 터덜터덜 한 걸음씩 내딛기 시작합니다. 나라야마의 정상에서 삶을 마감한 노인에게 천국이 기다린다는 전설. 그것만이 어머니께 드릴 수 있는 마지막 마음이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던 길, 눈이 내리자 타츠헤이는 다시 어머니에게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눈을 맞으며 눈 감고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향해, “우리 어머니, 눈 오는 날에 산에 오셨으니 복받으실 거예요.”라며 어머니와의 마지막 대화를 끝내고, 산을 내려옵니다. 집에 돌아온 타츠헤이의 눈에는 이미 어머니의 옷을 나눠 입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고, 마을은 눈에 덮여 갑니다.

 
 
모두가 타츠헤이와 할머니 같은 이별의 형식을 취하지는 않습니다. 같은 날 산에 오른 할아버지는 나라야마에 오르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전날 줄을 이로 끊고 도망 갈 정도였습니다. 산에 올라서도 혼자 남겨져 죽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아들에게 다시 돌아가자고 하다가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거절하던 아들에게 밀려 절벽에 떨어져 최후를 맞이하기도 하였죠.
 
영화 안에서 등장하는 마비키(間引き)또한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마비키는 원래는 식물을 재배할 때 묘목을 밀식한 상태에서 소수의 묘목을 남기고 나머지를 뽑아내는 작업을 뜻합니다. 반대로 너무 많이 늘어난 것을 인위적으로 줄인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태어난 아이를 바로 죽이는 데 쓰이기도 하였습니다. 마비키가 성행한 이유는 봉건적 인두세와 더불어 과도한 징세로 가난한 일본 백성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축내는 '새 식구'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라는 당시의 사회적 배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라야마’에 보내는 고려장 문화가 만연했던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겠습니다.
 
나라야마 부시코는 위와 같은 불편한 내용들은 많이 담고 있는 영화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에서 무질서해 보이고 미개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들의 일상은 살아남기 위한 무질서와 질서가 점철된 공동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